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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 태조 왕건의 성은 왕씨다? 박은봉의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 왕건의 성은 "왕"이고, 이름은 "건"이었을까?

왕건 집안은 원래 성이 없었다. 왕건 자체가 이름인 것. 고려시대 이전에는 왕족과 극소수의 대귀족만 성을 가졌고, 나머지 사람들은 성 없이 이름만 있었다. 유력한 호족의 집안이었던 왕건조차 성이 없었을 정도.

왕건의 "왕"이라는 성은 왕건이 성공한 다음 이름 앞의 "왕"을 성으로 삼은 것일 뿐이다. <고려사>에도 왕건의 아버지는 "용건"으로 할아버지는 "작제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왕용건, 왕작제건이 아니라는 말씀.


"성"은 6세기 무렵에 비로소 등장

삼국시대에도 성이 있긴 있었다. 신라 박혁거세의 박씨, 석탈해의 석씨, 김알지의 김씨가 떠오를 것이다. 그 밖에 고구려의 고씨, 백제의 부여씨도 있지 않느냐는 의문도 있지만 이는 중국과의 교류가 잦아지면서 생겨난 것이다.

그 증거 가운데 하나는 광개토왕릉비와 북한산 순수비를 비롯한 4개의 진흥왕 순수비, 울진 봉평비, 영일 냉수리비, 경주 남산신성비 등 6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금석문에 등장하는 수 많은 인물들 가운데 성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6세기 전에 만들어진 금석문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성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진은 568년 신라 진흥왕이 세운 함경도의 마운령 순수비.


고려의 "백성"은 지배집단을 일컫는 말

삼국의 왕실이 성을 사용하기 시작한 데 뒤이어, 소수의 대귀족들도 나름의 성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성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고려 초의 일. 고려 태조 왕건은 전국의 유력한 호족가들이나 자기에게 협력한 사람에게 성을 하사했다. 이에 고려 초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성은 전국적인 지방제도 정비로 지방으로 퍼지고, 때문에 오늘날 각 성의 시조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에 닿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당시에 성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소수였다. 전국에서 100가지 성에 속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지방의 지배집단 이상 신분의 사람이었다. 이들이 바로 "백성百姓
"이다. 백성은 고려시대에는 지배집단을 일컫는 말이었다.

참고로 본관은 해당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해주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예로 안동 권씨라 하면 안동의 유력한 호족에게 안동을 본관으로, 권씨를 성으로 삼게 하면서 안동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위 내용은 박은봉 교수님의 책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의 내용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는 많은 오류가 있습니다. 오류의 원인으로는 일본 제국주의가 뿌려놓은 식민사학이 낳은 의도된, 그러나 아직 청산되지 못한 오류, 해방 후 나라 만들기 과정에서 생성된 오류, 거슬러 올라가 조선 후기 집권세력의 성리학적 지배질서 강화와 맞물려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성 오류 등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는 학계에서는 이미 충분히 공유되고 있으나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전합니다.


이에 아예 따로 카테고리를 분류하여 재미있는 얘기를 요약하여 전하고자 합니다. 책을 구입하여 아이들에게 에헴하며 잘난 척 할 수 있을 정도로 근거도 탄탄합니다. 책은 보다 더 재미있으니, 구입을 권합니다.  "어린이를 위한 한국사 상식바로잡기"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